- 일요일 저녁을 얼룩진 시대착오적 게임
- 분노한 시청자들, "일본 예능 같다"
참고사진 = 런닝맨 유튜브 공식채널
23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이 시청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드라마 '키스는 괜히 해서!'의 주연 배우 안은진과 김무준을 게스트로 초대한 이날 방송에서 '뽀뽀는 괜히 해서'라는 제목의 게임을 진행했는데, 이 게임의 포맷이 시대착오적이고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문제가 된 게임은 한 출연자가 눈을 가린 상태에서 다른 참가자들의 뽀뽀를 받고, 그 촉감과 냄새를 바탕으로 누가 뽀뽀했는지 맞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출연자들은 서로의 얼굴이나 팔, 이마 등에 립스틱 자국을 남기며 차례로 스킨십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입술의 두께와 촉감, 주름 유무, 냄새까지 파악하며 마치 과학 수사를 하듯 추리에 돌입했다.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뽀뽀 마피아를 숨기기 위해 다른 참가자들이 숨결마저 핸드크림으로 위장하는 등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게임 진행 과정에서 여러 불편한 장면들이 포착됐다. 먼저 지석진이 양세찬의 뺨을 스치자 양세찬은 "아빠 냄새가 난다"고 반응했다. 이 과정에서 한 출연자는 "더럽다"고 말하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안은진의 차례였다. 그는 "괜찮으시겠어요? 진짜 해요? 부끄럽다"며 머뭇거렸지만, 결국 양세찬의 팔에 가볍게 입술을 댔다. 제작진이 꼭 얼굴에 하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멤버들이 안은진과 양세찬을 몰아가며 얼굴에 입술 자국을 남기게 유도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양세찬은 안은진의 차례가 오자 갑자기 선을 긋듯 "여러분, 이거 게임입니다"라고 외쳤다. 이는 역설적으로 게임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스킨십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종국은 주저하는 안은진에게 "연기할 때 뽀뽀하듯이 그냥 하는 건데 뭘"이라며 분위기를 부추기기도 했다. 이러한 멤버들의 리액션이 자칫 성적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지상파에서 공개적으로 성희롱이라니", "일본 예능처럼 느껴졌다. 한국 방송에서는 보고 싶지 않은 장면", "굳이 이런 설정을 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옆에서 리액션한 내용도 구시대적", "기분 더러웠다", "시대적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시청자들은 특히 일요일 오후 6시라는 온 가족 시청 시간대에 이러한 콘텐츠가 방송된 점을 문제 삼았다.
한 시청자는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시간대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요일 저녁 6시대는 전통적으로 가족 단위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TV를 보는 시간대로, 방송 심의에서도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황금시간대로 분류된다. 이런 시간대에 출연자들 간의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게임으로 만들어 방송한 것은 시청자 배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비판들이 이어졌다.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다 되는 줄 아나", "2025년에 이런 걸 방송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등 신랄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시청자들이 "종이에 입술 자국을 남겨 누구인지 추리하는 방식도 있었을 텐데 굳이 왜 직접적인 스킨십을 강요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를 살리면서도 출연자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시청자들에게도 거부감을 주지 않는 다른 방법들이 충분히 존재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이나 유리판에 립스틱 자국을 남기고 그것을 분석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추리 게임의 재미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드라마 제목이 '키스는 괜히 해서'니까 키스와 관련된 게임을 하고 싶었겠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신체 접촉을 하게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드라마 홍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출연자들의 인권과 시청자들의 시청 감수성을 모두 고려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사실 '런닝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프로그램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가학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게임 포맷으로 논란을 겪어왔다. 2021년 10월에는 '밀가루 청기백기' 게임에서 출연진이 밀가루가 묻은 장갑으로 서로의 얼굴을 세게 때리는 장면이 방송돼 가학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김종국의 강한 펀치를 맞은 정준하의 눈가가 충혈되고 "좀 아프다. 눈알이 나온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멤버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시청자들은 "이게 재미있나요?", "고통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예능인가요?"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2020년 11월에도 '고무줄 게임'으로 위험성 논란이 일었다. 출연진들이 "아프다",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며 고통을 호소했고, 시청자들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게임"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런닝맨'은 주기적으로 출연자의 신체적 고통이나 불편함을 예능의 소재로 삼아 논란을 일으켜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6년 말에는 김종국과 송지효에 대한 일방적인 하차 통보 사태로 큰 논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제작진이 두 사람에게 사전 협의 없이 하차를 통보하면서 해외 팬들까지 들고 일어났고, 결국 종영 위기까지 갔던 흑역사가 있다. 프로그램은 결국 김종국과 송지효가 남고 양세찬과 전소민이 새로 합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멤버들에 대한 예의 없는 처우는 오랫동안 비판의 대상이 됐다.
참고사진 = 런닝맨 유튜브 공식채널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게임의 문제를 넘어 제작진의 기획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홍보를 위해 신체 접촉을 전제로 한 게임을 구성한 제작진의 기획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른 방식도 충분히 있었을 텐데 시대적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현재 '런닝맨'을 이끌고 있는 최형인 PD 체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최형인 PD는 2022년 8월부터 '런닝맨'의 첫 여성 메인 PD로 부임하며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부실한 기획력, 멤버 간 케미 부족, 과도한 먹방 콘텐츠 의존 등으로 이미 시청자들의 불만이 누적돼 있던 상황에서 이번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실제로 최형인 PD 체제 이후 '런닝맨'은 시장 투어, 요리하기, 먹방 등 비슷한 포맷이 반복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초창기 '런닝맨'의 정체성이었던 이름표 뜯기나 추리 게임은 사라진 지 오래고, 대신 안전하지만 식상한 콘텐츠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시청자는 "예전에는 매주 방송이 기다려졌는데 요즘은 그냥 틀어놓고 보는 수준"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욱이 전소민의 하차 이후 프로그램이 더욱 침체되면서, 제작진은 강훈을 8주간 임대 멤버로 활용하고 2024년 하반기부터는 지예은을 합류시키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기획력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한 시청자는 "마치 일본 성인 예능을 보는 듯 자극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이는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예능계 전반의 시대착오적 관행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2025년 현재, 시청자들은 더 이상 '예능이니까', '웃기려고 한 거니까'라는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예능 콘텐츠에서도 인권 감수성, 성평등 의식, 상호 존중의 가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예능계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가학적 게임 등으로 인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21년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 각종 유튜브 채널들의 성희롱 콘텐츠 논란 등이 이어지면서,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장난이었다", "재미를 위한 것이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 방송 평론가는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재미가 누군가의 불편함이나 인권 침해를 바탕으로 해서는 안 된다"며 "제작진은 2025년의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성적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포맷은 결코 반갑지 않다"는 점이다. '런닝맨'은 2010년부터 시작해 15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장수 프로그램이다. 과거 추격전, 이름표 뜯기, 창의적인 미션 등으로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며 한국 예능의 새 지평을 열었던 프로그램이기에, 이번 논란은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런닝맨'의 초창기를 기억하는 한 시청자는 "예전에는 머리를 써서 미션을 해결하는 재미가 있었다. 배신과 반전, 추리의 요소가 있어서 매주 기다려졌다"며 "요즘은 그냥 먹고 떠들고 간단한 게임만 하는 것 같다. 그나마 이번처럼 자극적인 소재로 눈길을 끌려고 하니 더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런닝맨'은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한류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팬덤이 형성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포맷을 수출해 현지화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부진과 잇따른 논란으로 그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진정한 예능의 재미는 누군가의 불편함이나 굴욕을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출연자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콘텐츠야말로 2025년 예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단기적인 화제성이나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를 동원하는 것은 결국 프로그램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한 예능 제작자는 "요즘 시청자들은 정말 똑똑하다. 진정성 없는 기획, 출연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설정은 금방 간파한다"며 "장수 프로그램일수록 초심을 잃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최근 성공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케미와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들이 많다.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놀면 뭐하니' 등은 과도한 자극 없이도 출연자들의 일상과 개성을 보여주며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런닝맨' 제작진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시청자들의 비판은 단순한 흠집 내기가 아니라, 더 나은 콘텐츠를 향한 애정 어린 조언이다.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 보며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 그것이 '런닝맨'이 다시 찾아야 할 본래의 모습이 아닐까.
프로그램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아온 브랜드 가치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단기적인 화제성에 매몰되어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을 것인가. 선택은 제작진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시청자들은 더 이상 '예능이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이 용납되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